"초·중·고 교육은 공교육을 더욱 튼튼히 하고, 대학교육은 개혁을 통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훌륭한 인재를 키우겠다."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이날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교육부총리로 온 이상 교육시민단체 및 교원단체와 대화를 통해 교육의 공공성과 효율성이 조화를 이루는 정책 대안을 내겠다"면서 이같이 약속했다.
하지만 1974년 대전지방국세청 5급 사무관을 시작으로 30여 년 동안 줄곧 경제통으로 살아온 김 부총리의 이날 발언에 신뢰를 보내줄 교육시민단체와 교원단체는 거의 없는 듯하다. 최근 몇 년 간 스스로 내뱉은 말을 뒤엎고 이날 갑자기 '공교육 강화'를 내세운 대목에서는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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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부총리가 '3불정책'이란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김영식 교육부차관이 귓속말로 풀이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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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교육희망 안옥수 |
교육시민단체들은 "장고 끝에 악수"(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외국 교육자본과 기득권층 입장을 대변한 장본인"(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란 성명서 글투가 보여주듯, 보수와 진보를 떠나 그를 아예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단지 그가 경제 관료였기 때문은 아니다.
참여정부 들어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그의 '말'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김 부총리가 던져 놓은 교육관련 발언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목고로 강남 집값 잡겠다"... 이명박 시장과도 합의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 강남 못지않은 교육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북에 특목고를 세워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겠다"(2003년 10월 9일 발언, 경향신문)
강남 아파트 값 폭등으로 궁지에 몰린 당시 김 경제부총리는 2003년 10월 9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은 교육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을 샀다. 예체능계를 뺀 서울지역 8개 특목고(외국어고 6개, 과학고 2개) 가운데 강남지역에 있는 특목고는 한 곳도 없었기 때문. 실제로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한영외고를 제외하면 모두 강북지역에 있는 학교였다.
이른바 김 부총리의 교육구상은 이처럼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은 이상한 방향으로 쏠렸다. 그의 말이 나온 뒤 10여 일 뒤인 22일, 이명박 서울시장도 "강북 뉴타운 지역에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대규모 사설학원 단지를 조성하여 강남과 맞먹는 교육 특구를 육성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에 화답한 셈이다.
실제로 <동아일보> 같은 해 23일치 보도에 따르면 이 서울시장은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만나 합의했다"고 말했다. 몇 차례에 걸쳐 경제수장과 서울시장이 만나 평준화 체제를 뒤흔들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설치 문제가 밀담으로 오고 간 것.
이에 대해 유인종 당시 서울시교육감은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가 더 생기면 전국이 입시지옥으로 변할 것"이라면서 "나도 모르는 새 이런 말이 오갈 수 있는 거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김 부총리가 수장으로 있던 경제부처는 같은 해 9월 판교학원단지 건설방안을 내놨다가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강하게 유감을 표시하고 비난 여론도 빗발치자 백지화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 방안은 판교 지역에 1만평 규모의 학원단지를 건설해 강남의 사설학원을 유치, 강남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복안이었다.
공평과세 요구에 "사회주의 정책 하라는 것이냐"고 하기도
"젊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보다 강력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더 이상의 정책은 사회주의적 정책일 수밖에 없다."(2003년 10월 30일 10·29 부동산대책 비판이 일자, 한겨레신문 재인용)
같은 해 10·29 부동산 대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과 관련 김진표 부총리가 주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이 전해지자, 재경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네티즌들은 "이게 재경부 장관이 할 말인가? 아직도 민심을 모르느냐?", "공평과세가 사회주의냐"고 질타했다고 한다.
현재 교육부는 경제계 이상으로 이념공방이 치열하다. 한 교원단체의 통일교육을 놓고도 한쪽에선 화해평화교육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보수언론은 사회주의 김일성 항일유격대 교육이라고 몰아세우는 형국이다. 지난 해 말 국정감사에서는 한 야당 의원이 정부에서 편찬한 역사교과서를 놓고 사회주의 교재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틈만 나면 사회주의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공평과세 등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요구하는 네티즌을 보고 '사회주의를 하란 말이냐'고 쏘아붙인 김 부총리가 교육계 사회주의 논란엔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외국학교 내국인 입학 허용" 등 개방 발언에 '을사오적'비판 받기도
"교육 개방은 이미 2년 이상 검토해온 사안이며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2003년 3월 21일 대외경제장관회의, 서울신문 재인용)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겠다."(2003년 5월 28일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경향신문 재인용)
2003년 3월 21일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교육은 상품인가 공공재인가'를 놓고 김 부총리와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설전을 벌였다.
김 부총리는 윤 교육부총리가 "교육은 공공성이 짙은 만큼 외국의 상황을 봐 가면서 천천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에 반박해 교육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김 부총리의 주장에 따라 교육개방 양허안이 제출됐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전국 20여개대 학생들 6천여 명은 같은 달 전국대학생총궐기대회를 갖고 "양허안 제출은 교육주권을 팔아먹는 매국행위로 김진표 경제부총리 등 이를 추진한 몇몇 관료들은 '을사5적'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교조, 학벌없는사회,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등 4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범국민교육연대도 김 부총리를 '매국행위자'라면서 강하게 성토했다.
김 부총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해 5월 28일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초청간담회에서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수장에 어울리지 않게 이름은 외국인학교지만 한국인용 외국인학교를 만들겠다는 복안을 드러낸 셈이다.
"교육 문제 거론 않겠다" 약속, 그러나…
"비전문가가 교육정책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앞으로 교육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2003년 10월 23일 윤덕홍 당시 교육부총리와 식사하면서, 서울신문 인용)
강남 부동산 대책으로 평준화 폐지 목소리를 내던 경제 부처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들끓자 김 부총리가 당시 윤덕홍 교육부총리를 만나 사과하면서 한 말이다.
윤 부총리는 이에 대해 같은 해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교육문제에 대한 내막을 잘 알아서 이 분들(경제부처 사람들)이 이렇게(평준화 폐지와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확대)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평준화가 교육제도를 바꿀 정도로 집값 폭등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김진표 경제 부총리도 뜻을 같이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 당시 '비전문가로서 교육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윤 부총리한테 약속한 김 부총리는 15개월만에 경제수장에서 말을 바꿔 타고 교육부에 입성했다. 앞으로는 교육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아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위치가 된 셈이다.
그는 과연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교육문제를 다룰 것인가. 2003년 그가 쏟아놓은 말처럼 교육시장화 논리로 평준화 폐지와 과열과외를 부추기지는 않을지 많은 이들은 걱정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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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시민단체들은 27일 저녁 김 부총리 임명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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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교육희망 안옥수 |
이런 점에서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경실련 등 19개 교육사회단체가 모인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가 27일 저녁 긴급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 단체 안승문 정책실장의 말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교육부총리 임명은 군사독재 시대에도 없었던 반 교육적 인사였다.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등 국민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이가 경험도 없는 교육 부총리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누가 생각할 수 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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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5년 1월 28일치에 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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