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애들 모아놓고 소 싸움 시키지 말라”

집중인터뷰/ 학력방안 첫 입뗀 유인종 전 교육감
 
윤근혁, 김상정
 
"요즘 교육정책을 자꾸 아마추어들이 좌우하려고 하니까 힘들다.”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73, 건국대 석좌교수)이 8일 오후 3시 40분, 기자를 만나자마자 던진 뼈 있는 한 마디다. 그는 지난 해 8월, 8년 동안 지키던 서울교육수장 자리를 공정택 현 교육감에게 물려준 바 있다.

▲ 8일 건국대에서 만난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
ⓒ2005 윤근혁
유 전 교육감은 이날 서울 건국대 산학협동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방안과 관련, “일제고사를 봐서 학력을 올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면서 “일제고사를 보면 그 다음부터는 줄 세우기가 시작되고 학생이 학원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 전 교육감이 학력신장방안에 대해 공개 자리에서 비판 발언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또 평준화 해체 움직임에 대해서도 “초중등 교육의 평준화, 보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 추세이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라면서, 일부언론과 정치집단을 겨냥해 “몬테소리가 말한 ‘교육의 방해꾼’이 바로 이들”이라고 표현하는 등 강한 말투로 직격탄을 날렸다.

다음은 이날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줄인 것이다.

- ‘대학교육은 산업’이란 대통령 말에 발맞춰 김진표 부총리가 새로 왔습니다.
“우리교육은 1974년 평준화 시작부터 보편화교육의 단계에 왔습니다. 엘리트교육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기성세대들의 아집을 버리고 보편화 단계에서 논의를 해야 할 때입니다. 경쟁이라는 것을 경제학자들이 함부로 말합니다. 그러나 경쟁은 초중고에서 하는 게 아니고 대학에서 하는 것입니다.”

- 김진표 교육장관은 경제부총리 시절, 대학개혁보다는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유치를 수없이 강조해 왔는데요.
“그 분 그 때 집값 잡는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교육부총리가 되었으니 포지션이 다르잖아요. 지금은 교육수장이 되었으니 생각이 바뀐 상태라고 믿고 있습니다.”

- 지금도 고교평준화 때문에 학력이 하향평준화가 되었다고 일부 언론에서는 잇따라 글을 써대고 있고 이를 믿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초중등 교육의 평준화, 보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 추세이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입니다. 지난 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 결과에서 나왔듯이 한국 고등학교가 상위권입니다. 전부 평준화했기 때문에 올라간 것이죠.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부진아와 중퇴자가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그가 어렵게 입을 연 까닭'
인터뷰 후기/ 늙은 학자의 아쉬움과 바람

유인종 전 교육감은 이날 인터뷰에서 “사실 6개월 정도는 참아 왔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여태껏 입을 꾹 다물고 유구 무언했다”는 얘기다.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방안과 특목고 추가 설립 움직임을 놓고 그가 지난 8일 어렵게 꺼낸 말이다.

그는 이날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설립 움직임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후임자인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내놓은 학력신장방안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발언을 쏟아냈다. “후임자 일인데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평생 배워 온 교육 철학은 그의 입을 잇달아 움직이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유 전 교육감은 일방적인 보수언론 구조에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그리고 주간<교육희망> 등 진보언론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몇 번씩이나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오마이뉴스>에 자신의 발언이 잘 소개되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칠순을 넘긴 늙은 학자의 아쉬움과 바람이 가득 담겨 있는 순간이었다. / 윤근혁 기자

- PISA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아이들이 바로 96년 유 교육감이 일제고사를 없앨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결과로 다 나왔듯 문제해결능력은 세계 제일이었습니다. 왜 그랬느냐하면 일제고사를 없앴기 때문이죠. 초등학교 수행평가를 8년 했는데 이 애들의 문제해결능력이 이렇게 높아진 겁니다. 상위 5% 학생들의 성적도 높습니다.”

- 하지만 지금 많은 국민들은 초중등교육이 엉망이고 학력도 하향평준화가 되어 있다고 봅니다.
“기성세대와 언론을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몬테소리가 말했듯 ‘교육을 방해하는 어른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현실과 다르게 70년대식 귀족주의, 능력주의 잣대로 평등주의교육이념을 사실과 다르게 단죄하면 안 됩니다.”

- 왜 일부 보수언론들은 집요하게 학력 저하론을 자꾸 내세우고 있을까요?
“데스크에서 평준화를 흐트러뜨리려고 그렇게 (제목을) 뽑는 거죠. 이런 모습이 바로 몬테소리가 말한 ‘교육의 방해꾼’이라는 겁니다.”

“서울교육청 움직임은 평준화 깨려는 것”

- 서울시교육청이 현재 4명의 직원을 서울시청에 파견 근무시키고 있습니다. 공정택 교육감은 최근 ‘뉴타운 별로 특수목적고 설립 등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평준화를 깨는 것이라고 봅니다. 뻔한 것이죠. 지방에 비해 서울은 그 파급효과가 큽니다. 자꾸 평준화 보완책을 말하는데 그것은 학력을 통해서 경쟁을 부추기려는 기성세대들의 목소리입니다.”

- 자립형사립고 시범 연구결과가 올 6월에 나온다고 합니다.
“평준화 보완정책으로 자립형사립고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잘못된 정책입니다.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 세우면 세울수록 사회계층화와 함께 입시지옥이 됩니다. 서울에 5개 이상 생기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내신을 강조한 2008년 새 대학입시제도와 배치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추어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내놓은 학력신장방안 때문에 교육계가 시끄럽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다만 걱정하는 건(한참을 생각한 뒤), 일제고사를 봐서 학력을 올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우리 교육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제고사를 보면 그 다음부터는 줄 세우기가 시작됩니다. 그 다음은 학원으로 학생이 몰리고 그 다음엔 촌지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시험을 봐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지금도 시험 봅니다. 수행평가라는 것은 시험의 횟수는 훨씬 더 많습니다. 일제고사는 실컷 놀다가 중간, 기말고사에서 그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 보는 선진국 거의 없습니다. 수행평가는 세계 추세입니다.”

- 이 방안을 보면 성적통보방식을 3단계나 5단계로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계형이나 ‘수우미양가’ 통지표나 같은 거 아닙니까?(웃음) 역사가 증명합니다. 거꾸로 가다가 다시 돌아오면 시간이 걸립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 정도만 말하겠습니다.”

“일제고사는 구시대적 발상, 줄 세우기 시작될 것”

▲ 유 전 교육감은 인터뷰 도중 자리에서 여섯 번씩이나 일어나 판서를 하면서 내용을 설명했다.
ⓒ2005 윤근혁
- 전임 교육감인 유 교수님으로선 최근 사태가 ‘8년 동안 공들인 탑’이 무너진 것처럼 느끼겠네요.
“제가 일한 8년 동안의 성과라 하면 교육을 선진화 쪽으로 올려놓으려고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평준화는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교육개혁 방향은 뒤떨어진 아이들을 위로 끌어올리는 방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위권 학생들 위주로 문제를 삼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교육개혁 추세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평준화가 세계의 추세다’라고 얘기하는 교육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해괴한 자료로 학력저하를 보도할 때도 이들은 잠잠하더군요.
“저도 안타까운 것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교육학자들이 가만히 있는 것인데요. 위기상황에는 언제든 교육의 논리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학자들이 분발을 해야겠지요.”

- 마지막으로 전임 서울 교육수장으로서, 하고픈 말씀을 해주십시오.
"어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보통교육을 놓고 ‘폐쇄된 운동장에 애들 모아놓고 소싸움을 시키면서 어른들이 즐기고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우리나라 보통 교육단계의 아이들을 지나친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혹평입니다. 최근 수능부정과 조기유학은 바로 이런 과도한 경쟁체제의 산물입니다. 국가경쟁력의 기본은 대학교육이지 보통교육이 아닙니다. 고교 때까지는 다방면으로 활발하게 성장하게 하는 게 소중한 자산입니다. 하루 빨리 국가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 2005년 3월 19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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