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정부공약 죽고 한나라공약 살고...

[분석]교원인사혁신안, 수석교사제 등은 한나라공약
 
윤근혁
 
'교원인사제도 혁신방안'을 놓고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한쪽은 웃는 반면, 다른 쪽은 속을 태우고 있다. 이를 두고 '교육계 보수·개혁 세력 사이의 패싸움'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갈등의 본질을 단순화시키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공약을 지킬 것인가 VS 말 것인가
2. 노무현 정부의 공약을 펼 것인가 VS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공약을 펼 것인가.


뚜껑 열어보니 엉뚱한 '수석교사제' 등장

▲ 지난 23일 한국교육개발원이 연 교원인사제도 혁신방안 토론회는 전교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사진은 이날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항의하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
ⓒ2004 교육희망 안옥수
지난 23일 한국교육개발원(원장 이종재)이 내놓은 '교원인사제도 혁신방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예정됐던 교원인사제도 혁신방안 토론회는 전교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 연구는 노무현 정부의 공약 실행방안을 마련키 위해 교육부가 한국교육개발원에 맡긴 것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살펴보니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빗나갔다.

이 공청회의 무산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전교조 등의 책임론을 제기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참교육학부모회나 전교조 등 교육시민단체들은 "연구제목과는 딴판으로 '혁신'도 없고 '국민여론 수렴 과정'도 빠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설문조사도 없이 국민여론 수렴 과정이란 말을 쓰는 자체가 억지며 교장보직제란 공약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이날 발표한 결과물에서 '현행 제도(교장임명제, 초빙제)의 뼈대를 유지하되 일정 비율 공모제를 시행하고 실험적으로 자치학교를 두어 교장선출제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 근무평정제도도 그대로 둔 채 학부모·학생 평가가 빠진 새 교원평가제도와 병행키로 한 것.

더구나 연구 결과물 가운데 공약에도 없던 '수석교사제'를 새로 끼워넣은 것은 교육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평교사의 자격을 3, 4 단계로 나누는 방안으로 '대표적인 개악 내용'이라는 게 교육시민단체의 설명이다.

확인 결과 이 방안은 노무현 대통령 공약엔 없던 반면, 한나라당 대선 공약에는 들어 있었던 내용이다. 한국교총과 이 단체 산하기구인 교장협의회 등도 이의 실현을 수없이 주장해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종재 원장은 '교원인사제도 혁신방향'이란 발표문에서 "교사의 전문자격과 실적을 고려하여 '수석교사'로 우대할 수 있다"면서 교원자격다단계화를 제안했다. 결국 승진 복마전에 따른 학생지도 부실, 각종 비리의 원인으로 지적된 점수 위주의 승진제도에 칼을 대는 대신 평교사를 위한 새로운 승진 자리를 만든 셈이다.

어디로 갔나? 참여정부 교육공약

이번에 제기된 방안은 참여정부의 기존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로 2002년 노무현 대선 후보는 공약에서 "점수 위주의 승진경쟁체제를 지양하고 보직제, 초빙제 등 교장 임용제도를 다양화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기존 근무평정제를 개혁하고 교장 임무를 끝내면 평교사로 돌아오도록 하는 교장 보직제 등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내용이다. 노무현 후보 공약에는 학교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우선 과제로 놓았기 때문에, 수석교사제와 교원평가제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당시 공약에서 '학교장 책임 경영제'와 함께 수석교사제와 교원평가제 실시를 약속했다. 이 공약엔 기존 학교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었던 까닭에 교장 보직제와 근무평정제 개혁에 대한 혁신 의지는 없었다.

대선 당시 양쪽의 이 같은 주장은 올해 4·15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교육공약으로 이어졌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교장선출보직제와 근무평정제 완전 폐지를 공약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교장보직제와 근무평정제 개혁을 약속한 반면, 한나라당은 이 교장 인사구조 개혁안 대신 일반 교사 경쟁방안이라 할 수 있는 수석교사제 등을 내세운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교육시민단체들은 '교원인사제도 혁신안이란 내용물을 꺼내보니 참여정부의 것이 아니었다'고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상태다.

▲ 한국교총 산하 교장협도 이번 교원인사제도 혁신 방안 연구에 참여 해 '기존 제도 유지'를 강하게 요구했다. 사진은 지난 해 7월 초등 교장협의 연수 모습.
ⓒ2004 윤근혁
이상선 전 성남은행초 교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공약인 교장 보직제는 실현되지 않고 엉뚱하게 한나라당 공약이 활개치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 결과에 경악한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인옥 사무처장도 "무소불위인 학교장 자격증을 보직제를 통해 없애는 대신 학부모, 학생 참여가 빠진 허울뿐인 교원평가제를 내놓은 의도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한국교육개발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기존 승진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변화의 폭이 너무 크고 현실성 또한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한만길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특정 단체의 주의, 주장에 치우침 없이 승진제도 혁신방안을 연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종재 원장도 23일 공청회 무산 직후 자신의 이름으로 낸 성명서에서 "이 연구는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입안하는 '현장출발형' 정책개발 방식을 채택했다"면서 "나의 주장을 내세우기 이전에 다른 사람의 주장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전교조 등의 토론회 무산행위에 유감을 나타났다.

지난해 10월쯤 교장협의회는 각 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교장승진구조 개편사업은 당초 우려와 달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해 5월부터 이번 연구작업에 줄곧 참여했다. 지난해 12월 교육시민단체들과 함께 연구팀을 탈퇴한 전교조의 원영만 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기득권세력에 영합한 한국교육개발원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한나라당 정책연구소 교육개발원 해체하라" "교육개발원장은 한나라당 입당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번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압승과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의 선전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교육계 시계는 정반대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교육공약 대신 한나라당의 공약이 더 힘을 발휘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쪽 치우친 위원 구성...자격제 폐지안 '꿀꺽'
교원인사제도혁신안은 어떤 방식으로 무슨 내용 담았나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5월 30일 교원인사혁신협의회를 구성했다. '교원인사 혁신을 위한 국민여론 수렴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대통령 공약 실현을 위한 국책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 협의회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자를 놓고 삐걱대기 시작했다. 총 8개의 참여 단체 가운데 기존 승진제도 혁신을 요구한 단체는 사실상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등 세 단체뿐이었다. 이밖에 교장협이나 한국교총, 학교사랑실천연대 등 5개 단체는 현 상태 유지 쪽에 기울었다.

더구나 개인별로 참여한 시도교육청 인사나 전문가 또한 현행 제도 고수를 강조하는 인사들로 짜였다는 게 교육시민단체의 불만이었다. '혁신과 유지 쪽이 3:5(단체) 또는 3:7 (인원)구조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미 협의회 인적 구성으로만 봐도 그 결과가 예측된 셈이다.

이에 따라 진행과정에서도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개혁발목잡기 연구'라며 지난 해 12월 탈퇴를 선언해 사실상 기존 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단체들만 최종 논의에 참여하는 파행을 겪은 바 있다.

교육개발원은 23일 "지난해부터 협의회를 구성해 8차에 걸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승진제도, 교장임용제도, 자격제도, 교원평가에 대해 논의했으나 단체간 입장 차이가 첨예해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다"면서 자체 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교원평가제도

동료교사에 의한 다면평가제가 뼈대다. 하지만 근무성적평정제도도 그대로 남겨뒀다. 교육부가 올초 약속한 학부모 평가 참여를 비롯 학생 참여방안은 빠졌다.

교육개발원은 현행 근무성적평정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교장 승진임용제도가 존속되는 한 근평제도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평정의 요소와 기준이 구체적이지 못한 점을 감안, 학습지도 생활지도 영역을 세분화했다.

한편, 교육부 방안대로 교장평가제 도입도 거론됐지만 이는 시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상향식 평가방법을 사실상 막은 셈이다.

▲ 교장승진제도

현행 자격승진체제의 골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했다. 교장임명제와 초빙제를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만 가산점을 줄이는 등 근무평정제도의 평가항목을 손보기로 했다.

교장자격제 폐지를 주장해온 교육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교장공모제'는 전체 학교의 10% 범위에서 실험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나마 기존 교장, 교감 자격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놨기 때문에 평교사가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임용기간 만료 후에는 임용 전 근무지와 직위로 복귀하는 것이니 보직제"라고 주장하는 반면, 전교조는 "교장 자격제를 그대로 둔 채 흉내만 내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수석교사제도

교사직과 학교행정직의 자격체계를 이원화하고 교사직 자격을 다단계 체계로 만드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현재 '2급 정교사⇒1급 정교사'의 2단계 체계 속에 선임교사 또는 수석교사란 직위를 새로 넣어 3단계 또는 4단계로 만들겠다는 방안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원 승진구조를 이원화해 학교행정가 중심의 과열 승진구조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전교조는 "꼬마 교감을 더 두는 꼴로 옥상옥을 초래할 뿐더러 승진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 윤근혁 기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4월 28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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