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화요일

조선의 공교육 흔들기에 함께 흔들린 교육부

럭비공 ‘조선, 교육부’, 어디로 튈까?
 
윤근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을 흔히 이 공에 비유하는데, 이 공은 무엇일까요?”

3월 17일 일요일 저녁, ‘KBS 생방송 퀴즈가 좋다’에서 사회자가 읽은 문제다. 이 문제의 보기는 아래와 같았다. ‘1번 배구공, 2번 축구공, 3번 럭비공, 4번 탁구공.’
이 인기 퀴즈 방송이 나온 지 이틀만인 19일, 대부분의 아침 신문엔 '보충수업 공식 부활'이란 큰 활자가 머릿기사로 떠 있었다.

98년 10월 22일 교육부는 ‘교육비전 2002’ 방안을 발표하면서 ‘보충수업 폐지’를 공언한 바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운동의 종점은 2002년인 올해였다. 30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같은 입으로 ‘딴소리’를 하고 나선 것.

▶ 같은 입으로 딴소리 한 조선·교육부

최근 교육부 방안에 대해 조선과 동아를 뺀 경향·한겨레·중앙 등 주요 일간지들은 사설까지 써가며 '입시교육 강화로 공교육을 내실화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교육부를 매질했다.

색다른 건 스스로 ‘할말은 하는 신문’이라 광고하는 조선이었다. 조선은 주요신문 가운데 유일하게 20일치 사설에서 보충수업 부활을 공식 환영하고 나섰다.

“과거 이런저런 부작용과 폐단을 이유로 금지했던 보충수업을 부활시키고 체벌을 허용키로 한 것은 그 나름대로 주목할 점이다. …보충수업의 순기능만을 살려 교육 보조수단으로 자리잡도록 교장·교사·학부모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할 말은 하는 존재’가 되려면 일관성이 기본. 과연 조선은 어땠을까?
시계를 교육부의 ‘보충수업 폐지’ 발표가 난 98년 10월로 되돌려 보자.

놀랍게도 정권 초기인 이 당시 조선일보는 교육부의 방안에 박수를 쳤다. 같은 해 10월 23일 나온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육비전 2002를 확정함으로써 현 정부의 교육정책 틀이 완성됐다. …결론부터 말해 개혁의 방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새 학교문화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려면 정부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이다.”

조선은 이후 99년까지 ‘보충수업 폐지’ 조치를 뒷받침해주는 보강 기사를 충실하게 썼다. 제목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보충수업 해방 고1 ‘행복한 고민’, 정말 신나요” (99년 3월 23일치 31면), “고1-중학생 보충수업하면 학교장에 인사불이익”(99년 3월 13일치 1면), “일부고교 ‘강제 보충수업’ 여전, 전면 금지된 1학년까지 실시”(99년 7월 24일치 29면)
이런 조선이 2년 5개월만에 손바닥 뒤집듯 일관성을 팽개친 것.

70년대 초 ‘평준화 조치’가 발표되자 ‘완전한 평준화와 평준화의 전국화’를 부르짖던 조선이 ‘평준화 폐지’ 전도사로 돌변한 것을 떠올려보면, 요즘 보충수업 관련 보도도 이해가 갈만하다.

▶ 공(公)교육이 공(空)교육 판

럭비공 정책 뒤엔 항상 럭비공 언론이 있는 법. 자칭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의 럭비공 교육보도가 교육부와 어울려 우리교육을 조금씩 부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엔 공(公)교육이 공(空)교육 판이다.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 2002-03-27 제298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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