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푸른 5월, 퍼렇게 멍든 마음을 말한다

[이사람] 6학년 임한결·김가람·김민철·정승찬
 
윤근혁
 

▲토론하는 아이들.     ©윤근혁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이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린이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어린이가 자라나는 새싹들이란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산과 들이 푸른 옷을 입은 때가 바로 5월이다. 이때는 여러모로 기분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자연의 그것처럼 정말 푸를까. 이들은 푸른 꿈을 가슴에 품은 채 새싹처럼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에겐 싱그러운 5월에 걸맞지 않게 퍼렇게 멍든 가슴도 있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멍 자욱이 생겼을까. 아이들의 '선생님'인 우리들은 이 멍 자욱을 어떻게 풀어주면 좋을까.

서울에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이들 넷을 지난 4월 12일 오후에 만났다. 이 아이들은 어떤 사랑과 어떤 슬픔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다.

학교와 학원으로 맴맴

-요즘 학원 다 다니니?
"예"(다같이)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을 얘기해보자.
한결: "시간에 쫓겨요. 과외가 넘 많아서요. 학원 가느라 아침에 7시에 나갈 때도 있고……."

-어떤 학원에 다니니?
한결: "과외는 두 개, 학원은 하나. 과외를 너무 열심히 해서 좀……. 일본어, 국어, 한자, 영어. 네 개 국어를 배워요."
민철: "학원은 테니스, 축구, 검도, 수학. 거의 다 운동이에요."

▲임한결 "지금은 선생님이 분풀이로 때리면 안 되잖아요. 부모님한테 항의도 들어오고요.”     ©윤근혁
-시간에 쫓기니까 어떤 점이 힘이 드니?
한결: "숙제하기가 어렵고요. 과외 선생님한테 (매를) 맞아요. 과외 선생님이랑 밀리지 않겠다고 계약서까지 써놨거든요."

한결이가 '계약서'란 말을 하자 나머지 아이 셋은 "와 대단하네! 하고 입장단을 맞췄다.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학원을 두세 개 이상 다니고 있었다. 이는 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학교 선생님 말고도 두세 명 이상 더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면 학교 생활하면서 어려운 것은 뭐가 있을까. 아침에 학교 올 때 어떤 생각이 들어?
승찬: "가기 싫죠."

-학교 올 때 왜 싫어?
승찬: "밤에 늦게 자고요. 뭐라 그래야 하나"(움찔).
한결: "숙제 안했을 때 오기가 싫어요."
가람: "아니요. 전 (숙제) 안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수학경시대회 때는 진짜 학교 가기 싫고요."
민철: "보기 싫은 시험이 있을 때 학교 오기 싫고 그래요."

-그럼 학교 올 때 즐거운 날도 있을 텐데.
가람: "친구가 많으니까 내가 심심한 편이 많아서 친구랑 있을 때가 참 좋아요."
한결: "저도 방학 때 진짜 죽음이에요. 저도 심심하지 않아서 즐겁게 학교 와요."
승찬: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또 빨리 방학이 오면 좋겠고."

왕짜증 왕따, 왕도는 없다?

-6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본 적 있니?
한결: "2학년 때. 친구랑 눈 마주치기도 싫고. 학교 가기가 싫어진 적이 있어요."

-너희들 왕따란 말 들어봤지?
(아이들은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왕따 얘기 좀 해보자.
가람: "제 친구   이란 애가 있는 데요. 3학년 때 왕따를 당했데요. 왕따를 시작한 애가 있는데요.   는 조금 내성적인 편이에요. 도움을 못 줘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어요."
민철: "제 친척 중에 있었어요. 그 친척은 공부도 좀 떨어지고 성장발육이 좀 늦어요. 애들이 이런 것을 갖고 놀리고 왕따를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좀 가슴이 아플 때도 있었어요."

이 때 민철이의 눈 주위가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다. 그래서 민철이한테 한번 더 물음을 던졌다.

-그럴 때 놀리는 친구들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니?
민철: "  버리고 싶었어요."

-왕따는 왜 생기는 것 같아?
민철: "잘 살지 못하는 애들도 왕따를 많이 당하고요. 이유가 다양해요. 어떤 애들은 잘 안 씻고 다니기도 하고 피부 색깔이 검은 색이고요. 뚱뚱하고 그런 애를 싫어해요. 그런 애들은 선생님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왕따를 당하니까."
한결: "정신장애인 아이도 왕따를 당해요."

▲김가람 "그 선생님이 좋은 것은 저희들을 가르치실 때 부모님같이 사랑으로 대해주시고…"     ©윤근혁
-누가 왕따를 당하는지 선생님인 나도 잘 모르겠더라.
민철: "선생님께 얘기하잖아요. 그러면 또 애들이 뭐라고 해요. 그럴까봐 선생님한테 말을 못해요. 말 하면 때리고 막 그런 애들도 있고요."

-아까 왕따 당하는 애들도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그럼 왕따 벌이는 애들은 어때?
입을 모아: "그건 더 나쁜 것이에요."

-왜 그렇지?
가람: "왕따를 시키는 애들은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 그렇게 놀리는 것 같아요. 근데 겉모습은 스스로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한결: "왕따보다 은따가 더 슬퍼요. 은근히 따돌리는 거요. 은따는 애들이 놀아주는 척 하면서 또 안 놀아줘요."

왕따 당하는 애들도 문제지만 왕따 하는 애는 더 나빠

-그럼 왕따를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승찬: "왕따가 되는 원인을 없애야죠. 원인은 스스로 깨끗하게 다니고 새 옷 입으면 될 것 같기도 하고……."
한결: "저는 (승찬이랑 생각이) 다른데요. 정신적인 장애인은요. 그걸 고칠 수가 없어요."

-그럼 정신 장애가 있는 아이는 어떻게 하면 될까.
한결: "머리 장애는 거의 착한 아이들인데……. 몸이 장애이면 그래도 애들이 옆에서 도와주면 좋은 것 같아요."

-왕따 문제 선생님도 답답하거든. 선생님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민철: "반대로 왕따 시켜요. 한번 당해보라고.(웃음) 선생님이요. 엄마랑 한번 전화해서 얘기해보고 그 애를 뭐 어떻게 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한결: "그건 곤란해요. 인기 있는 애들은 절대 왕따 못 시켜요. 왕따 시키려는 애가 오히려 왕따를 당해요."
가람: "(선생님이) 한번 대화를 나눠보고 왜 그랬냐. 왜 게가 왕따 시켰느냐 그 아이의 생각을 알아보고 나서 어떤 조치를 취했으면 해요."
승찬: "(선생님이) 왕따 시켰다고 때리면 너무 마음에 상처를 입어요. 편지를 왕따 당한 애한테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쓰면서 보내게 해요."

이 말을 들으며 내가 아이들한테 왕따 해결책이랍시고 말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나는 이른바 '조폭식 해결책'을 내세우곤 했다. 아이들한테 다음처럼 의식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애들아, 약한 사람한테는 약해야 하고, 강한 사람한테는 강해야 한다. 약한 사람한테 강한 것처럼 못난 일 없고 강한 사람한테 약한 것처럼 비굴한 일 없단다."

▲김민철 "선생님들이 때릴 때는 때리더라도 생각을 해보시면서 때렸으면 좋겠어요."     ©윤근혁
-이제 선생님 얘기 좀 해보자. 선생님 6년 동안 여섯 분 정도 만났지? 좋았던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어?
민철: "    선생님이요. 숙제도 적게 내주시고 그리고 싸웠을 때 선생님들이 해결해 주세요. 화해를 시켜주시고 그리고 왕따 당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애들 웃음으로 좋게 해주시고."
한결: "어떤 선생님은 화해할 때 뽀뽀를 하게 해요. 웃기잖아요. 숙제를 안 해와도 집안 사정 안 좋으면 그런 것 얘기 안하시고, 공부 못하면 따로 남아서 보충수업 해주시고."
가람: "    선생님이 계셨는데요. 어떤 면에서는 참 너그러우시고 어떤 면에서는 엄격하신데 일단 그 선생님이 좋은 것은 저희들을 가르치실 때 부모님같이 사랑으로 대해주시고 그랬어요."
승찬: "이전 학교 선생님은 숙제를 안 내주셨어요. 학원 다녀서 시간 촉박하다고. 저희들 입장을 잘 아셔서 뭐 하고 싶은 지 잘 아셔요."

웃음과 사랑 품은 선생님이 최고

-그럼 나빴던 선생님도 얘기해보자.
한결: "어릴 때 조금만 실수해도 막 두들겨 패고요. 몽둥이 큰 게 있거든요. 몸 전체를 엄청 세게 때려서요. 종아리, 팔 그런데 때리고. 너무 아프게 때려서요. 아무리 남자 애들이래도 막 울어요. 부모님한테 항의도 들어와요. 그 때는 학교 가기가 싫었어요."
가람: "선생님이 때릴 때는 날 위해서 그러시는 것인데 나쁜 선생님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어요."

-솔직히 나는 분풀이하느라 때린 적도 있는데.
한결: "선생님은 꿀밤 준 것이잖아요. 지금은 선생님이 분풀이로 때리면 안 되잖아요. 부모님한테 항의도 들어오고요. 이번에 자살한 교사도 있잖아요. 꿀밤 두 대 때렸다고. 이 게 말이 되냐고요."
민철: "저는  학년 때 공부를 못했는데 선생님이 수학경시 잘 못한 점수를 애들한테 알려주는 거예요. 어떤 애는 더 좋아하고 어떤 싫어하는 애는 계속 싫어해요. 차별을 하셨어요. 제가 그 선생님을 좀 때려주고 싶은 생각까지 막 든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매를 드는 것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을까.
승찬: "저는 때리지 않고요. 말로 해서 타이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애를 때리면 그에 대해 원망을 갖게 돼요.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는요. 어떤 선생님이 책상을 붙여서 그 안에서 싸우라고 그래요. 나중에 그 안에서 막 싸워요. 나머지 아이들은 구경해요. 구경하면서 잔인했어요."
한결: "선생님이 매를 드셔야 해요. 요즘엔 선생님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요. 숙제도 때리면 밤새서라도 하는데 말로 타이르면 그냥 몸으로 때우지 뭐. 이런 식으로 가니까 오히려 안 해올 것 같아요. 하지만 무조건 때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때리면 더 나빠질 것  같아요."
가람: "저는 한결이랑 생각이 똑 같아요."
민철: "숙제 안하거나 친구끼리 싸웠을 때는 때리지 말고 말로 해줬으면 좋겠고요. 때릴 때는 때리더라도 생각을 해보시면서 때렸으면 좋겠어요."

-요즘 선생님들 보면서 너희들 가르치기가 쉬운 것 같아?
아이들 입 모아: "어렵죠."

-왜 어려운 것 같아?
한결: "저희가 말을 안 들으니까."
민철: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치기가) 쉽다고 생각해요."
가람: "나는 중간 정도라고 생각해요."

-민철이가 말해 볼래?
민철: "선생님들 보면 우리들 가르치실 때 전과 같은 걸 보면서 하시잖아요. 그래서 쉽다고 생각해요. 답이 다 나오고 풀이가 다 나와 있으니까 똑같이 하면 되잖아요."

-아까 선생님이 어려울 것 같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한결: "선생님은 애들끼리 다투면 그 아이들을 어떻게 혼내야 할지 곤란하고 애들이 떠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실 것 같아요. 엄마가 선생님인데 중학교 애들이 진짜 공부를 안 한데요. 학원에서 다 배웠으니까. 그 중학생들을 때릴 수도 없고 고민 많이 하시는 걸 봤어요."

▲정승찬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대화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윤근혁
저희들 좀 재미있게 보살펴 주세요

-이젠 우리나라 선생님들한테 바라는 점을 말해 줄래?
한결: "재밌는 선생님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맨날 때리면 꺼려하게 되요. 학교 가기도 싫어지고. 근데 재밌으면 학교 분위기도 화목해지고. 싸우는 것도 잘 화해가 되고 선생님을 믿게 되고 그래요."
민철: "저희들을 잘 이해해 주시고 애기들처럼 잘 보살펴 주시고. 제가 3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요. 아이들이요. 너는 참 잘 온 거라고. 우리 선생님이 짱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선생님이 제일 좋았어요. 모르는 점도 있으면 끝나고 남으라고 해서 어떻게 푸는 것이라 철저히 설명해 주시고."
승찬: "아이들 마음을 잘 알아주시는 선생님이요. 아이들과 대화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대화를 해보는 게 좋다고 그러는데 선생님들은 이렇게 얘기하시거든. 너희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을 때도 있어. 왜냐하면 너희들 수업 끝나자마자 학원 간다고 그러지, 숙제 검사도 해야 하고 학교 일처리도 해야 하거든.
가람: "선생님은 참 힘든 직업이구나."
한결: "이해를 해 드려야죠. 저는 그래서 쉬는 시간에 (선생님한테) 가는데요."

-이젠 너희들의 인권에 대해 알아보자. 인권이란 못난 사람이든 잘난 사람이든 아이들이건 노인이건 다 사람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인데, 너희는 사람 대우 받고 있니?

이 말이 나오자 "받고 있어", "아냐" 하는 엇갈린 말들이 터져 나왔다.

민철: "6학년 올라오니까 학교가 재미있어지고. 인권을 지켜 주시는 것 같아요."
한결: "가게에서 줄을 섰는데 저를 무시하고 끼어드는 어른이 많아요. 너무 어른들만 생각해요."
민철: "가게가면 떨이하면서 어른들만 사라는 거예요. 애들은 안준다는 거예요. 엄마 심부름 왔는데 안 해주니까. 기분이 그래요."
한결: "이전 학년 때 학교에서도 그런 것 본적 있어요. 어떤 아이가 빵모자 쓰고 다녔는데 (선생님이) 안 어울린다면서 모자 벗기고 그러셨어요. 모자 쓰는 것은 자유잖아요."
민철: "선배들한테 인사 안한다고 '싸가지 없다 밟는다'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중학생한테 돈을 뺏긴 적도 있고요."

-어른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겠구나.
한결: "유교 문화 때문에 높은 사람을 무조건 올려주잖아요. 그런 것 안 되죠. 높은 사람이면 높은 사람답게 행동해야지, 애들은 저리가라 이런 것은 싫어요. 높다고 돈 뺏는 것도 싫고요. 애들 처지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춘기 겪으면 화내잖아요. 그러면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린 사람 대우 받고 있어", "아냐!"

-학교는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니?
가람: "모든 아이들이 다 놀 수 있도록 운동장이 더 컸으면 좋겠어요."
한결: "엄마들이 자기 자식만 너무 챙기면 선생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너무 과잉보호하지 말고 제대로 자랄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민철: "학교에 최신형 컴퓨터와 같은 시설도 했으면 좋겠어요. 수리를 해서 싹 바꿨으면 좋겠어요."
승찬: "저는 책상을 새 것으로 바꿔 줬으면 좋겠어요."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된 질의 응답식 토론(?)은 이렇게 끝났다. 참석한 아이들은 자기들이 한 말 가운데 '부모님과 선생님에 대한 내용 등 몇 가지를 기사에서 빼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의 말길(언로)은 넓고 깊을수록 좋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야말로 얼마나 삭막한가. 푸르른 5월을 맞으며 학생인권의 출발은 말길을 뚫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그래야 아이들의 마음이 굽힘없이 푸르게 푸르게 잘 자랄 것이다.

이 기사는 월간<우리아이들> 2004년 5월호에 쓴 것입니다.  

 
2004/04/21 [00:16]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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